1.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이란?
쿠바드 증후군은 아내가 임신했을 경우 남편도 입덧, 요통, 체중 증가와 같은 육체적·심리적 증상을 아내와 똑같이 겪는 현상을 말합니다. ‘쿠바드’라는 말은 ‘알을 낳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Couver’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트리도우언(Trethowan)이 사용하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환상 임신(Phantom pregnancy)', '동정 임신(Sympathetic pregnancy)‘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실제로 2007년 영국 런던 세인트 조지스대의 아서 브레넌(Dr. Arther Brennan) 박사 연구팀이 임신한 아내를 둔 남성 282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쿠바드 증후군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의 연구에 따르면 쿠바드 증후군은 임신 3개월에 가장 심하다가 점차 약해지며 임신 말기가 됐을 때 다시 심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쿠바드 증후군을 겪는 남성들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도 겪는데 젖샘을 자극하는 프로락틴의 수치가 높아지고, 성욕을 자극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급격히 떨어지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아울러 이 남성들은 구토, 체중 증가, 허리 통증 등의 심리적, 신체적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쿠바드 증후군은 아버지가 양육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사회보다는 모계사회나 처가살이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더 흔히 발생합니다. 그러한 현상은 남편이 아내 및 아내 혈족의 울타리 안에서 아내 배 속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임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 엄마가 양육권을 독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 등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실제 사례와 원인
1) 실제 사례
쿠바드 증후군 현상은 고대로부터 알려져왔으며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본의 저술이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유사한 풍습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 인도, 스페인이나 중국, 파푸아 뉴기니 등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도 남태평양의 일부 부족에서 여전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 남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남성은 아내의 임신 말기와 출산 직후의 잡다한 금기사항을 지켜야 하고, 아마존 북서부 위토토족 남성은 자식이 태어나기 전까지 고기를 먹지 않거나 사냥 무기에 절대 손을 대지 않는 등의 쿠바드 행동을 실천한다고 합니다.
- 한국의 옛 조상들에게는 '지붕지랄'이라는 쿠바드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안도 박천이라는 지방에서는 부인이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은 집의 지붕 위에 올라가 비명을 졌습니다. 마침내 아내가 아기를 낳으면 남편은 고의적으로 지붕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 파푸아 뉴기니 원주민의 경우 해산달이 다가오면 남편은 따로 오두막을 짓고 아내 및 다른 부족원과 한동안 만나지 않습니다. 출산일이 되면 남편은 산통을 흉내 내며, 이런 행동은 아내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품에 안겨줄 때까지 지속됩니다. 마치 영화에서 해산의 고통에 땀에 흠뻑 젖은 산모가 아이를 품에 안고 행복의 미소를 짓듯,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아버지가 흐뭇해하는 것입니다.
2) 원인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굳이 자식 양육에 관여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선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아이가 내 자식이라는 것을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아이가 자랄 때 신경을 쓰든 안 쓰든 아이는 여전히 자신을 두려움 반, 존경 반으로 아버지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부족에선 이런 사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원시적 모계 사회에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여성의 프리섹스가 암암리에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아내 배 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공동체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아이 양육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엄마가 아이에 대한 권력을 독점하는 것 역시 견제해야만 합니다. 이렇듯 가족 관계에서조차 피해 갈 수 없는 미묘한 권력 다툼이 양육에 관한 남자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예가 바로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3. 남성의 역할
전 세계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남성들은 여성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능력에 대해 신비로워하면서도 질투해 왔습니다. 여성은 매월 달마다 피를 흘리며 생명을 낳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평생 동안 어머니라는 존재와 아버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유대관계를 가지게 되며 이어져 왔습니다. 그렇게 남성의 역할은 단지 아버지라는 존재로서 아이와의 관계는 보통 사회적 제도로 보장받는 형태의 관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원시 부족의 샤먼들은 여성처럼 화장을 짙게 하기도 하고, 생리와 출산을 흉내 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 토착 부족의 남자들은 페니스 아래 부분을 절개하여 인공적인 질(膣)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생리혈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가부장적 사회에서조차 남성들은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의 신비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여성의 지위가 높은 사회에서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조금이나마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해산의 고통을 흉내 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해 보입니다. 사실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별로 사랑이나 존경을 받는 역할은 아닙니다. 가부장적이었던 사회가 갑작스레 붕괴된 현대에서는 남성의 역할은 아버지로서 월급만 벌어오는 기계 같은 존재로의 역할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에서는 가끔씩 집에 들어오기만 해도 온 집안이 반기던 분위기였고 아버지가 오니 자식들은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하던 사회였습니다. 이렇게 남성보다는 여성의 역할인 더 인정받는 시대가 오면서 쿠바드 증후군이 조금 더 보편화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